추운 겨울 아침에 서울의 수은주가 급격히 떨어지면 신문 방송에서 최저 기온이 영하 12℃, 체감온도가 영하 20℃라면서 앞 다투어 날씨 방송을 전하고 이런 특별한 날에는 적어도 모든 시민이 오늘의 최저기온에 관한 한 거의 다 알게 된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매일 이 시간 현재 갈릴리 호수의 수위를 항상 정확히 알고 있다. 특별히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져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일부로 호수의 수위 변동은 이스라엘 국민의 DNA에 각인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70년대까지 농업 국가였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사막지대다. 엽록소가 있는 모든 식물은 뿌리에 관개 파이프가 다 연결되어 있다. 역으로 말하면 파이프라인이 없는 곳은 식물이 살 수 없는 나라다. 거리의 가로수, 정원의 꽃, 잔디, 농장의 채소들 하며 모든 풀과 나무는 실핏줄 같은 파이프라인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건조한 사막지대인 이스라엘은 필요한 물의 80%를 요르단 강을 흘러 들어오는 갈릴리 호수에 의존하고 있다. 나머지는 겨울에 잠시 내리는 비와 바닷물을 걸러서 민물로 사용하는 정도이다. 이처럼 자연자원이 열악한 이스라엘은 나름대로 적응하는 방식을 지식자원 개발로 전환함으로써 우리나라와 같은 자원빈국이 벤치마크해볼 만한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을 1주일간 방문한 후 우리나라에 돌아와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 비가 만약에 이스라엘에 내린다면 몇 억 달러어치가 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현 이스라엘 수상인 Ehud Olment가 부수상이었던 2005년에 초청을 받아 이스라엘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분은 28세부터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평생을 정치가로 일해 온 분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부총리의 역할은 경제, 노동, 과학기술,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그야말로 실무 실세형 기능 조정자였다. 무엇보다도 경제정책과 과학정책이 하나의 팀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경제팀, 사회팀, 과학교육팀 등 기능별 팀워크를 중심으로 국가 경영을 해오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경제 기획과 과학기술산업 계획이 하나의 부총리 휘하에서 긴밀한 팀워크를 이루고 있었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긴밀히 협조하여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 경영의 가이던스를 제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총리실에는 Chief Scientist Office(CSO))가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같은 기능처럼 보이지만 이스라엘의 CSO는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경제, 환경, 미래사회와 같은 인문학이 망라된 150명의 두뇌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이스라엘 최고의 두뇌집단을 통해서 모든 이스라엘의 주요 핵심 정책이 입안되고 실행되며 피드백 되어 진다. CSO는 지난 70년 초부터 운영되어 지금까지 거의 40년간 이스라엘의 정치 군사 외교 문제를 제외한 모든 사회 경제문제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CSO의 지난 40년간의 업적은 실로 지금의 부강한 이스라엘이 있게 해준 브레인의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원천이기도 했던 이스라엘도 한때는 농업 국가였다. 사막 한가운데 놓여있는 이스라엘이 농업국가로 출발한 것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조한 사막 주변지대가 그러하듯이 물을 잘 다스리면 사막은 그간 축적된 풍부한 유기물질을 기반으로 옥토로 변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사막에서 농업입국을 부르짖으며 경제발전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의 관개 기술을 만들어 내게 된다. 최소한의 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술이 그것이다. 갈릴리 호수의 물을 대규모 파이프라인으로 주요 거점에 운반한 후 차츰차츰 가느다란 파이프로 연결하여 각 가정과 농장에서는 실핏줄 같은 스프링 파이프를 통해 나무 하나하나 작은 줄기마다 뿌리에 직접 물을 공급하는 기술을 이용한다. 다른 나라처럼 스프링클러를 통해 공기 중에 분사하여 증발 등 물을 낭비하는 방식이 아닌 직접 뿌리에까지 물을 닿게 하는 root to root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식물은 일생을 마칠 때까지 겨우 겨우 갈증을 해소하는 정도의 꼭 필요한 만큼의 수분을 흡수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채소나 과일은 크지 않고 볼품없이 생겼으나 당도나 숙성도는 어느 나라보다 높아서 국제 시장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관개기술 덕분에 갈릴리호수의 제한된 수자원으로 국가가 물 문제를 해결해오고 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농업의 부가가치가 국제경쟁력에 뒤떨어지면서 이스라엘의 CSO는 물 부족의 근본문제 해결을 위해 해수의 담수화 프로젝트를 만들어 기술개발에 나서게 된다. 바닷물을 민물로 만드는 데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소요되는데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주변국에 자원으로 매장되어 있는 석유도 생산되지 않는다. 따라서 물을 전기 분해하여 전기적으로 소금을 걸러내는 대신 삼투압의 원리를 더하여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소금을 분리해내는 기술을 개발하여 특허를 대량으로 확보하고 그 성능을 매년 개선해오고 있다.
CSO의 최초프로젝트는 화려하게 성공하여 그 후 수십 년간 그 특허로 로열티를 받아 오고 있다. 대게 담수화 프로젝트는 한 건당 수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수반하는데 거기에 따르는 특허권은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른다.
그 이후 80년대에 들어 이스라엘의 CSO는 원자력 발전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상업용 원자로의 설계에 꼭 필요한 방사능 안전기술 개발에 착안하여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만들고 5년에 걸쳐 안전기술 표준화와 그에 따른 방어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당시 중동의 석유 감산과 같은 오일쇼크를 몇 차례 경험한 서방국가들은 화석연료 대체 수단으로써 원자력 발전소를 비로소 짓기 시작하면서 CSO가 개발한 특허 및 안전 기술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먼저 가서 기회를 기다리는 전략은 자연과학자만의 역량으로는 불가능 할 것이다. 사회, 경제, 미래학 등이 망라된 트렌드 분석과 과학기술의 결합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 할 것이다.
이에 고무된 이스라엘 정부는 90년대에 접어들어 반도체와 그 응용기술이 발화되는 시점에 IT기술을 치켜들고 마침 그 당시 구소련으로부터 유입된 수많은 유태인 과학자를 활용하여 IT 기술입국을 선언하게 되었다. IT 기술이야말로 사막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모래알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기고 90년대 초기에 IT 하드웨어 기술개발에 주력 한 후 후반에 들어 IT 응용 소프트웨어에 기술투자를 배분하는 것이다. 개인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의 등장은 IT 기술의 변화속도를 초스피드 경쟁으로 내몰았다. 무어의 법칙과 같이 컴퓨터의 용량과 처리속도는 18개월마다 2배씩 성장하여 90년대 10년간 무려 100배의 규모로 성장함으로써 정보통신 산업이 신경제라는 이름으로 선진 세게 경제의 축으로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이같이 하루가 다르게 혁신적으로 변하는 기술과 그 응용사업은 기존의 R&D 방식으로는 따라가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 정부는 세계에서 최초로 벤처기업이라는 개념을 세우고 역동적이며 기민하게 움직이는 새로운 경제 단위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벤처기업은 그 특성상 매우 좁고 깊은 특화 기술을 치켜들고 거기서 파생되는 사업 모델을 기반으로 인터넷에 접목된 글로벌 비즈니스다. 따라서 전문 엔지니어 그룹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사업이 시작되는데 이들은 대부분 자금, 영업력에서 소외된 그룹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정부의 CSO에서는 직접 벤처 펀드 조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국제적으로 투자자들을 끌어 들여 수 백 개의 벤처기업을 육성하되 성공하면 직접 미국의 NASDAQ에 등록하여 캘리포니아의 산호세로 모이게 했다. 90년대 초반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이스라엘 벤처 기업이 스탠포드, 버클리와 같은 유명한 대학을 배경으로 한 샌프란시스코 주변으로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실리콘 밸리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현재 실리콘밸리에 입주한 기업의 25%정도가 이스라엘 정부의 펀드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이스라엘의 CSO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IT기술 및 응용사업 모델을 모두 육성하는데 여력이 미치지 못하자 세계 주요국가와 이스라엘 정부간에 government to government fund를 만들어 벤처 육성에 참여했다. 많은 사업이 성공하여 나스닥에 진출하자 전 세계에 소문이 퍼져, 이스라엘 정부는 무려 35개국과 정부 자원 펀드를 만들어내어 그 규모가 5조원에 이르게까지 했다. 그 후 CSO는 이스라엘 정부와 IBM, 인텔과 같은 다국적 기업과 government to enterprise fund를 만들어 수많은 벤처를 육성하여 세계경제에서 IT신경제로 일컬어지는 90년대 기술개발전략에서 대 성공을 거두게 된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초대형 기업의 하나로서 RAD라는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는 무려 100여 개의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밖에도 규모는 차이가 있으나 수십 개의 벤처 집단을 거느린 중견 기업들이 수 없이 많아 존재하고 이들은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로열티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견 벤처 기업들은 자연 자원이 없는 이스라엘의 경제적 뿌리로 완벽하게 착근되고 있으며 적어도 향후 10년 이상의 로열티 수익을 수반하는 두뇌 지식의 작물에 해당한다 하겠다.
이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IT 벤처 이후의 기술 개발 주제는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이스라엘의 CSO는 미래의 트렌드 분석을 뉴미디어의 활성화에 두고 있었다. 지난 10년간은 PC와 인터넷의 결합에 의한 엄청난 인터넷 경제(Internet Economy 1)를 탄생시켰다면 앞으로의 10년은 TV와 인터넷의 결합에 의한 새로운 인터넷경제(Internet Economy2)를 탄생시킬 것으로 보고 여기에 꼭 필요한 기술을 준비하여 미리 기다리는 것이다. TV가 인터넷과 결합함으로서 꼭 필요한 기술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CSO에 몸담고 있는 150명의 과학자들은 놀랍게도 네트워크 보안 기술을 이미 90년대 말에 선정하여 관련 벤처 기업을 육성해 오고 있었다. 이제 PC의 제한된 화면이 아닌 고화질 HDTV의 풀 스크린으로 인터넷을 통해 찾아온 많은 컨텐츠들이 소통되기 위해서는 각 가정과 연결되는 인터넷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빠른 프리미엄급으로 개량되어야 한다.
한국을 필두로 세계의 선진국들은 차세대 통신망(Next Generation Network:NGN)계획을 이미 진행 중에 있고 이는 각 가정 당 인터넷 속도를 초당 5백만 비트에서 열 배나 빠른 5천만 비트로 높이기 위해 광케이블을 직접 아파트, 집단주택 또는 거실까지 직접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주택의 70%는 PC를 통한 초고속 인터넷은 물론 TV를 통한 고화질 HDTV를 단 1초의 끊김 없이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세계 최첨단 네트워크를 이미 운용하고 있으며 2012년까지 100% 전 가구에 공급하는 계획이 진행 중에 있다.
이처럼 한국을 중심으로 선진국의 통신망이 차세대급 초고속망으로 바뀌게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질 좋고 가치 있는 영화나 게임 등 유료 컨텐트의 유통 채널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네트워크가 잘 준비되더라도 네트워크의 보안이 취약하다면 컨텐트를 누구나 무료로 불법 시청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질 좋은 컨텐트 사업자는 공급을 거부하게 되며 이 사업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의 CSO는 90년대 후반부터 각종 컨텐트를 인터넷상에서 그 누구도 원형 그대로 빼 갈 수 없도록 하는 보안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벤처 기업으로 하여금 데이터를 암호화하되 암호화 알고리즘을 그 누구도 해독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수많은 벤처들이 여기에 참여하여 여러 종류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냈고 그 중 가장 검증된 벤처가 NDA라는 회사인데 이 회사의 암호화 알고리즘은 지금껏 한 번도 네티즌에게 해독된 사례가 없어 명실상부하게 전 세계 암호 시장의 독과점 상태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특히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NDA가 개발한 암호화 장비를 갖추지 않은 컨텐트 사업자에게는 영화를 공급하지 않기도 한다. 세계 각국이 수십 수백 조원의 투자를 통해 네트워크를 현대화하고 인터넷망을 정비하는 사이에 이스라엘은 그 네트워크의 현대화가 끝나면 거기에 얹혀질 새로운 서비스가 무엇일지 그 서비스는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할지를 미리 예측하고 개발하여 미리 기다리는 선견 선점 전략을 취함으로써 천문학적 비용을 수반하는 인프라 투자는 각 국가가 맡고 이스라엘은 저 비용의 지식 투자를 통해 부가가치를 싹쓸이해 가는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 가는 전형적인 지식 경제의 드라이브 정책을 성공적으로 꾸려가고 있다. 요약해 보면 60년대 농업 국가의 이스라엘은 국가 전략 과제로 70년대에 해수의 담수화 기술을, 80년대에 원자력 안전 기술을 , 90년대에 IT벤처 육성을, 2000년대에 네트워크 보안 기술을 석권함으로써 국가 경영의 기틀을 튼튼히 해 왔다. 이제 이스라엘은 GDP관점에서 세계경제의 30위권에 있지만 지적 재산의 수준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지식 경제의 최 강자에 속하는 21세기형 성공적 국가 경영의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천연 자원이 거의 전무한 우리나라의 국가 경영이 나아가야 할 길을 이스라엘의 지식 경제 개발의 사례를 통해 여러 분야에서 벤치마크 해야 할 것이다.
윤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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